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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은 우리를 키운다
그러나 틀을 넘어설 용기를 잃는 순간, 그 틀은 껍데기가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틀 안에서 성장한다. 가정, 학교, 회사, 사회. 틀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준다. 그래서 틀은 필요하다. 하지만 건강한 틀은 사람을 가두지 않는다. 안정을 주면서도 숨 쉴 공간을 남겨 두고,각자의 속도와 다름을 존중한다. 반대로 경직된 틀은 사람보다 기준을 먼저 바라본다.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는 순간,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회사가 구성원을 하나의 방식으로만 평가할 때,창의성보다 순응이 익숙해진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이래야 한다'는 틀에 맞추려는 순간,관계는 조금씩 멀어진다. 자연은 다르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다. 숲에는 같은 나무가 하나도 없고,꽃은 모두 다른 계절에 핀다. 다름을 품기에 숲은 더욱 건강하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좋은 틀은 사람을 통제하지 않

hyun
6월 29일2분 분량


우리는 결국 사랑을 향해 자란다.
큰아이의 그림을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아이가 사물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사람의 물리적인 눈은 나이를 들수록 결국 퇴행한다. 하지만 내면의 눈은 조금 다르다. 평생 눈을 뜨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오랜 시간 자기 안을 지나며 비로소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작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사람을 보고도, 같은 현상을 바라보면서도 내면이 깊어질수록 전혀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삶은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끝에는 결국 사랑으로 자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면으로 향하는 여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특히 예민함과 영민함으로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물질적 풍요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일 수도 있고, 예민하게 느끼

hyun
5월 23일3분 분량


그리고 올해도 그들이 왔다.
이렇게 작은 녀석들도 어미 새의 소리와 내 소리를 구분한다. 생명과 생존은 그저 경이롭다. 작년에 왔던 작은 새들인데, 올해는 창고 지붕 위에 집을 지었다. 나는 아침마다 장화를 신고,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쓴 채로 창고를 드나든다. 정원 일을 하려고 나서는 길이다. 어느 날부터 인가 위에서 자꾸 뭔가 떨어졌다. 나뭇가지 같은 것들. 올려다보니 지붕 위에서 작은 새가 집을 짓고 있었다. 둥지를 지으면 쫓아낼 수 없다. 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냥 자리를 조금 비켜주기로 했다. 그렇게 같이 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까만 눈 하나와 마주쳤다. 순간, 어미 새가 놀라서 날아갔다. 나는 가만히 서 있다가 혹시나 싶어 핸드폰을 들어 위쪽을 비춰봤다. 그 안에 입을 쩍 벌린 새끼들이 있었다. 먹이를 기다리며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작은 것들. 아마 먹이를 주다가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 잠깐 나간 모양이었다. 작년

hyun
4월 26일2분 분량


관계에서의 기대를 다시 묻다
기대를 내려놓고 나서야 나는 나를 다시 만났다. 살면서 관계 속에서 종종 상처를 받는다. 돌이켜보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기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중심 안에서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길, 채워주길,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 관계는 쉽게 상처가 된다. --- 이상하게도 우리는 가장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가족이 그렇다.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그런 기대가 자연스럽고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도 그 기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관계는 점점 무거워진다. --- 그래서 관계는 종종 이렇게 엇갈린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주었다고 느낀다. 시간도, 에너지도, 마음도 아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는 그 안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말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까지

hyun
4월 16일3분 분량


아이는 내 의식의 가장 가까운 투영이다.
아이를 키운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아냈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단 한 번도 “공부해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염려했던 것은 성적이 아니라 자기만 알고 돈과 성공을 위해 자신을 소모하는 삶이었다. 그래서 단 한 가지는 말했다. 그런 삶 만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이들은 내 마음대로 자라지 않는다. 대신 부모가 살아가는 방식을 자신의 ‘안전한 기준’으로 삼아 세상으로 나간다. 그래서“공부해라, 정리해라, 지금 놀면 안 된다” 이런 말들은 결국 잔소리가 된다. 아이들은 말이 아니라 삶을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내가 붙잡은 한 가지는 이것이었다. 처음 아이를 낳고 키울 때 나는 정말 겁이 많았다. 양가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서 23개월 터울의 두 딸을 키우느라 늘 동동거렸다. 출산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붙잡은 한 가지는 이것이었다. “나는 통로일 뿐, 아이는 스스로 나올 힘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믿었고 아

hyun
3월 18일5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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