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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사랑을 향해 자란다.
큰아이의 그림을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아이가 사물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사람의 물리적인 눈은 나이를 들수록 결국 퇴행한다. 하지만 내면의 눈은 조금 다르다. 평생 눈을 뜨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오랜 시간 자기 안을 지나며 비로소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작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사람을 보고도, 같은 현상을 바라보면서도 내면이 깊어질수록 전혀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삶은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끝에는 결국 사랑으로 자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면으로 향하는 여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특히 예민함과 영민함으로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물질적 풍요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일 수도 있고, 예민하게 느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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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전3분 분량


새벽 정원에서
아침에 테라스에서 명상을 하려고 카푸치노를 만들어 잠시 앉았는데 정원 식구들이 궁금해졌다. 새벽 명상을 하는 테라스 정원의 봄 아직 공기가 식어 있는 시간, 소리보다 먼저 느껴지는 고요 속에서 나는 찻잔을 들고, 식물들과 천천히 인사를 나눴다. 막 올라오기 시작한 어린 수국의 잎은 마치 누군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처럼 여려 보였고, 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낮에는 같은 정원을 가꾸면서도 이런 순간들을 잘 보지 못한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다 보면,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그런데 새벽의 정원은 다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시선도 자연스럽게 천천히 움직인다. 그제야 비로소 작은 변화들이 또렷하게 보인다. 오랜시간 명자나무의 꽃만 알아봤고, 작년에야 비로소 명자나무의 열매가 향기롭다는 것을 알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오늘은 앙증맞은 아기 열매를 마주하게 되었다. 아기 열매(명자, 무화과, 버찌, 앵두)들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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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2분 분량


암스테르담에 가기 전, 튤립을 만나다.
내게 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특히 국외 여행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내 역할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국내에도 좋은 곳이 많지만, 굳이 국외로 향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의 나라라는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의 삶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은 내 무의식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의미를 찾거나 목적을 가지고 다른 나라들을 방문하면서, 그 안에서 나는 어딘가에 갇혀 있는 나, 한 가지 방식으로만 굳어 있는 나, 유연하지 못한 나를 마주했다. 낯선 곳에 가면 여전히 즐기기보다는 전투장에 들어선 것처럼 생존 모드로 바뀌는 나를 발견하는, 조금은 아픈 시간들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나는 문득 ‘나는 나와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하고 싶은 말보다 해야 하는 말에 익숙해진 채 살아온 나. 사실 삶에 그렇게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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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4분 분량


그리고 올해도 그들이 왔다.
이렇게 작은 녀석들도 어미 새의 소리와 내 소리를 구분한다. 생명과 생존은 그저 경이롭다. 작년에 왔던 작은 새들인데, 올해는 창고 지붕 위에 집을 지었다. 나는 아침마다 장화를 신고,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쓴 채로 창고를 드나든다. 정원 일을 하려고 나서는 길이다. 어느 날부터 인가 위에서 자꾸 뭔가 떨어졌다. 나뭇가지 같은 것들. 올려다보니 지붕 위에서 작은 새가 집을 짓고 있었다. 둥지를 지으면 쫓아낼 수 없다. 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냥 자리를 조금 비켜주기로 했다. 그렇게 같이 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까만 눈 하나와 마주쳤다. 순간, 어미 새가 놀라서 날아갔다. 나는 가만히 서 있다가 혹시나 싶어 핸드폰을 들어 위쪽을 비춰봤다. 그 안에 입을 쩍 벌린 새끼들이 있었다. 먹이를 기다리며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작은 것들. 아마 먹이를 주다가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 잠깐 나간 모양이었다. 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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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2분 분량


잘 먹기 위해 산다.
봄 날 새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커피를 내린다. 따뜻한 잔을 들고 앉아 명상을 하고, 몸을 조금 풀고, 글을 쓴다. 그 시간이 지나야 하루가 시작된다. 예전에는 하루가 나를 끌고 갔다. 시간표가 있었고, 강의가 있었고,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지금은 내가 하루를 꺼내 쓴다. 천천히, 필요한 만큼만. 외부 일정이 없는 날이면 명상 후에 강아지를 데리고 걷다가 자연스럽게 밭으로 들어간다. 한 시간쯤 흙을 만지고 풀을 매다 보면 내가 뭘 하려고 나왔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러다 달래를 발견한다. 눈에 띄면 그냥 뽑는다. 계획은 없었는데, 점심 메뉴가 정해진다. 달래는 그렇게 식탁으로 온다. 봄에는 먹을 게 너무 많다. 머위는 자꾸 올라오고, 고사리는 꺾어도 또 나오고, 두릎과 허브는 하루 사이에도 향이 짙어진다. 참두릅과 개두릅 수확, 봄의 맛이다. 머위 꽃은 튀김으로 먹어야 하고, 잎은 쪄서 먹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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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4분 분량


연초록이 올라오는 계절을 깊게 느낀 날
비슷한 것 같지만 고유의 빛깔이 있다. 생명은 그런 것이다. 아침을 마주하러 베란다에 나와 나무들을 오래 바라보게 됐다. 창을 사이에 두지 않은 자연과의 조우. 그 안에 나도 일부로 앉아 있는 이 순간이 참 좋다. 가까이 있는 단풍나무에는 연초록 잎들이 조용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앙증맞은 여린 씨앗들이 빨갛게 맺혀 있는 모습도 보였다. 작고 여린 것들이 자기 자리에서 때에 맞춰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조금 뒤의 도토리 나무의 여린 연두빛 잎사귀는 흐린 그레이톤 하늘과 참 잘 어우러진다. 자연은 늘 이렇게 있었을 텐데, 내가 눈길을 오래 주지 않았던 거구나. 꽃이 피는 순간이나, 열매가 맺히는 결과에 더 익숙했구나. 먼산의 초록의 풍경을 바라본다. 이렇게 부드럽고, 이렇게 싱그럽게 서로 다른 색들이 겹쳐 있는 수채화 같은 장면을. 베란다에 앉아 바람을 느끼고, 공기를 그대로 마시며 그저 이 안에 머물러 있다. 왜 늘 꽃과 열매에만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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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3분 분량


더하지 않아도 다 괜찮아
가만히 들어봐, 어둠 속의 개구리 소리를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들 4월 한가운데 밤의 개구리 소리 일부만 보이지만 다 존재하는 아찔하게 아름다운 초승달 괜찮아 다 괜찮아 존재하면 괜찮아 생명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더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뜰을 걷고 강아지를 쓰다듬고 머물다 다시 라벤더 옆에 와 그냥 다 괜찮아 Nothing More Needed, All Is Well Things unseen yet still here Mid-April night the sound of frogs Only a part is visible yet everything exists The breathtaking crescent moon It’s okay All is well To exist is enough Life feels so precious I don’t want to add anything Just walking the yard stro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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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1분 분량


꽃 멍
자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벚꽃과 봄을 기다리며 살다 보니 벚꽃의 절정만 잠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꽃을 피워내기 까지의 인내와 고통과 고독과 기다림이 보이기에 더 아름답다 흩날리는 벚꽃 사이로 스며드는 싱그러운 초록의 빛살 같은 잎들 꽃이 져야만 피어나는 초록 이 잎사귀들이 이대로 져도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 존재해도 괜찮다고 또 다른 계절이 다시 온다고 말해준다 보라와 초록이 어우러진 이 조용한 향연 속에서 나는 가장 나답게 존재한다 입맞추고 싶은 이 아름다움 앞에서 무엇을 더 바랄까 이미 다 있는 것을 온전히 느끼고 이 순간을 누리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부요다. Lost in Blossoms Living while waiting for cherry blossoms and spring, I have come to see that it is not only their brief moment of full bl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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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1분 분량


관계에서의 기대를 다시 묻다
기대를 내려놓고 나서야 나는 나를 다시 만났다. 살면서 관계 속에서 종종 상처를 받는다. 돌이켜보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기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중심 안에서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길, 채워주길,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 관계는 쉽게 상처가 된다. --- 이상하게도 우리는 가장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가족이 그렇다.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그런 기대가 자연스럽고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도 그 기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관계는 점점 무거워진다. --- 그래서 관계는 종종 이렇게 엇갈린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주었다고 느낀다. 시간도, 에너지도, 마음도 아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는 그 안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말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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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3분 분량


밥 짓고 물을 끓이며
밥을 했다. 병아리콩을 넣어 오곡밥을 지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밥이 잘 됐다. 밥 냄새는 묘한 안정감을 준다. 주걱으로 밥을 퍼내다가 붙어 있는 밥알을 천천히 긁어 입에 넣는다. 옆에서는 물이 끓고 있었다. 하얀 김이 올라오고, 그걸 보고 있으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푸근해졌다. 주방 한 켠, 물이 끓는다. 지금 아이들은 잘 모를 수도 있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막 지은 밥 냄새, 따뜻한 김이 올라오던 부엌.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어떤 안도감의 기억이었다. 어쩌면 집밥은 레시피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인 것 같다. 어딘가에 속해 있고 돌아갈 수 있는 느낌. 누구에게나 하나 쯤은 있을 것이다. 그 사람만의 밥의 기억.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하는 맛의 기억이. Cooking Rice, Boiling Water I cooked rice. I made multigrain rice with chickpeas, and today, it turned out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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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1분 분량


나에게 소품은 기억이다.
커피와 일기, 마음 내킬 때마다 하는 나만의 의식. 하와이에 머물 때 커피 갤러리에서 산 잔에 커피를 내려 마시며 일기를 쓴다. 나는 물건을 사용할 때 그 안에 담긴 시간을 함께 꺼내는 편이다. 그래서 인지 오늘 커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하와이에 있을 때 나는 제일 나다웠던 것 같다. 어떤 기준도, 어떤 판단도 없이 그냥 자연 속에 섞여 살던 시간. --- 새벽이면 닭 울음소리에 눈을 떴고 일찍 문을 여는 커피 집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그냥 앉아서 글을 썼다. 글을 써야 해서가 아니라 쓰고 싶어서 썼다. --- 걷다가도 문득 쓰고 싶어지면 노천 카페 아무 데나 앉았고 선셋이 예쁘면 바게트 한 조각에 크림 치즈를 바르고 둘둘 말아서 그냥 바다로 달려가 데크에 앉아 글을 썼다. 선셋 때가 되면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찾아와 자연과 하나가 되던 비치. 커피, 바게트, 음악이 있는 곳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그냥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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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3분 분량


소유하지 않기에 빛나는 것들
겨울을 견디고 피어나는 꽃과, 태양을 받아야 비로소 빛을 내는 등불은 어쩐지 나의 삶을 닮아 있다. 벚꽃 아래 앉아가만히 이 꽃을 바라본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는어쩌면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한때 깊이 사유했던 신에 대한 사랑에 대해 떠오른다.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이 왜 이토록 오래 남는지에 대하여. 닿을 수 없기에 더 또렷해지고, 가질 수 없기에 더 깊어지는 마음.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닿지 않는 것에 마음을 둔다.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기에 남아 있는 설렘,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머무는 소망.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소망이라는 감정에 더 가까운 것일 텐데, 그것을 붙잡으려는 순간, 이름은 바뀌어 집착이 된다. 그리고 그때, 가벼웠던 아름다움은 서서히 무게를 얻는다. 왜 우리는 그토록 가지려 하는 걸까. 머물 수 없는 것을 붙들고, 흐르는 것을 멈추려 하며, 이미 충분히 주어진 순간조차 거듭 확인하려 든다. 믿음은 보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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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3분 분량


봄 손님들(little visitors of spring)
이스탄불에서 데려온 작은 액자 위에 봄 손님이 잠시 앉았다. 이쯤 되면 무당벌레가 많이 보인다. 따뜻한 집을 쉼터로 생각하고 찾아오는 녀석들이다. 가만히 보면 그 작은 동그란 등에 그려진 선과 색이 참 또렷하고 아름답다. 조그만 날개를 펴고 가볍게 날아오르는 모습이 앙증맞다. 봄에는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벚꽃 나무에는 새가 앉아 꿀을 따 먹고,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한다. 수선화가 피기 시작한 정원에는 다른 고양이가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고 있다. 나무를 오르는 아이와 아래에서 바라보는 아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말을 건다. “얘, 이건 우리 정원이야.” 말을 해놓고 보니 조금 웃음이 난다.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이 꽃도, 이 나무도, 이곳을 스쳐 가는 생명들도 잠시 함께 있는 것들일 뿐인데. 얼마 전에는 강아지 솔이와 숲길을 걷다가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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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2분 분량


튜닝 중, 끝나지 않을 것처럼 살았던 시간
가장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순리대로 살기로 한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이 내 몸의 리듬과는 많이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주 5일, 하루 8시간이라는 기준이 무색하게 돌아보면 나는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살아온 시간에 더 가까웠다. 돌봐야 할 사람들, 책임져야 할 일들 속에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던 시간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결국 완전히 소진이 되었다.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된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어디까지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돌아보면 나는 어쩌면 이 삶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멈추지 않았고, 그래서 계속 앞으로만 나아갔다. 끝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조금은 덜 쥐고, 조금은 더 쉬었을지도 모르는데. 끝이 없다고 여기니 끝나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밀어붙이며 살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원래 자연의 흐름 안에서 살아가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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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3분 분량


2026년 3분의 1 지점에서
2026년 딸아이와 함께 내 마음에서 꺼낸 비전 보드 올해를 시작하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그저 내가 어떤 삶을 살아도 되는지를 조용히 허락해보기로 했다. 해야 하는 것들이 아니라 해도 되는 것들. 몸을 움직이고, 바다를 걷고, 가볍게 달리고, 춤을 배우고, 잘 먹고, 천천히 준비하고, 나를 돌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시간까지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흙을 만지는 시간.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기억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나를 위해 나의 정원을 가꾸고, 나의 밭을 돌보는 시간. 정원은 나를 회복 시키는 곳이다. 돌아보면 나는 이미 그 삶을 선택해왔던 것 같다. 흙을 만지고 싶어서 1층 집을 선택했고, 모두가 어렵다고 말했지만 작은 정원을 만들어 그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그저 아이들을 생각해서 했던 선택 들이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주 오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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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4분 분량


선진(先進), 사람이 사람 답게 사는 것
진짜 선진(先進)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비가 온다는 소식은 몸과 마음을 바쁘게 하지만, 나는 규정된 속도를 지키며 아침 정원 일을 했다. 비는 예정보다 일찍 내려 집으로 들어와 따뜻한 티타임을 가진다. 오늘은 정원에서 수확한 배추꽃에 올리브유와 계란을 입혀 튀겨내고, 고구마와 함께 플라워 커피를 마신다. Seasonal Menu: Flower Coffee · Battered Rapeseed Blossom · Roasted Sweet Potato 계절이 내어주는 재료들은 참으로 풍요롭다. 이런 식재료 대신 인스턴트 음식들에 오래 길들여 있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것들은 고맙고 필요하기 하지만 '넘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 는 말처럼 물질적 풍요 속의 정신적 빈곤을 가져오기도 한다. 누리지 못하고 관리하고, 대비하고, 자책하던 삶에서 티타임을 누리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일처럼 어려웠다. 과거는 떠났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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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2분 분량


전쟁과 평화
왕후 비빔밥: 오곡 현미밥/침에 수확한 채소와 머위꽃, 배추꽃 튀김을 곁들인 아보카도 비빔밥/머위된장 두부국/레몬밤 티 봄의 아침은 황홀하다. 씨를 뿌려 모종으로 옮겨 심은 야채들을 거둔다. 오늘 먹을 만큼이면 족하다. 달래 향이 얼마나 향긋한지, 봄에 이 맛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밭의 김을 매고, 올라온 고사리를 꺾어 손질하고, 된장국에 넣을 머위잎과 튀김할 머위꽃을 정성스레 씻는다. 곁들일 허브티에 쓸 레몬밤도 봄빛 속에서 튼실하다. 식탁에 꽂을 히아신스와 사과꽃을 곁들이며, 이 재료로 만들 음식들을 조용히 떠올린다. 나를 찾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자연의 것들, 가벼운 것들로 식사하게 된다. 가꾸고 다듬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조리는 거의 하지 않고 양념 또한 단순하다. 소금이나, 직접 따서 말린 장미와 올리브유를 섞어 만든 로즈오일 발사믹 드레싱이나 약간의 장 종류를 쓴다. 전쟁 같던 날들에는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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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3분 분량


나는 몸을 ‘관리’하지 않는다, 유지한다.
인바디를 오랫만에 측정했다. 81점. 30대에는 체지방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점수가 훨씬 더 좋았다. 젊었을 때는 운동을 하면 몸이 바로 반응했었다. 지금은 다르다. 완경 이후의 몸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유지한다’ 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물을 좋아했다. 물속에 들어가면 몸이 가벼워지고, 내가 나로 돌아오는 느낌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됐다. 학생들은 나를 ‘인어공주’ 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더 많은 역할을 살아내고 있다. 교육자로서, 연구자로서, 가족과 관계 안에서. 열정 만으로는 부족한 순간들이 있고, 형식과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시간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됐다. 한 사람으로서의 '나' 로. 나를 돌보는 방식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운동을 하는 것도, 먹는 것도, 쉬는 것도. 모두 내가 나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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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4분 분량


아이는 내 의식의 가장 가까운 투영이다.
아이를 키운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아냈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단 한 번도 “공부해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염려했던 것은 성적이 아니라 자기만 알고 돈과 성공을 위해 자신을 소모하는 삶이었다. 그래서 단 한 가지는 말했다. 그런 삶 만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이들은 내 마음대로 자라지 않는다. 대신 부모가 살아가는 방식을 자신의 ‘안전한 기준’으로 삼아 세상으로 나간다. 그래서“공부해라, 정리해라, 지금 놀면 안 된다” 이런 말들은 결국 잔소리가 된다. 아이들은 말이 아니라 삶을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내가 붙잡은 한 가지는 이것이었다. 처음 아이를 낳고 키울 때 나는 정말 겁이 많았다. 양가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서 23개월 터울의 두 딸을 키우느라 늘 동동거렸다. 출산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붙잡은 한 가지는 이것이었다. “나는 통로일 뿐, 아이는 스스로 나올 힘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믿었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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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5분 분량


내 노후는 '나' 라는 브랜드다.
나는 존재로 시작한다. 오늘, 명함이 도착했다. 예정된 날이 아니었는데 마치 때를 맞춘 것처럼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알아차렸고, 바로 움직였다. 어제부터 이유 없이 이 재료들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쑥, 민들레, 진달래, 그리고 해당화. 의도를 가지고 고른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는 대로 모은 것들이었는데 오늘 식탁 위에 올려보니 이것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쑥은 인내의 시간이었고, 민들레는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힘이었으며, 진달래는 으스러지듯 피어내는 삶이었다. 그리고 해당화는 장미보다 더 진한 향을 가진 꽃. 바닷바람을 맞으며 스스로를 지켜낸 향이다. 이 해당화는 일 년 전, 미리 따서 준비해둔 것이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니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그 향으로 음료를 만들었다. 작은 화병에는 무스카리를 꽂았다. 봄의 초입에 피어나는 꽃, 이제 막 시작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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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5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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